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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우리나라 현대사의 비극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by 눈부신 오늘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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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민특위는 친일파 처단을 위해 제헌 국회가 만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약칭으로 그 활동은 실패한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을 꼽으라면 바로 반민특위 활동이 실패함으로써 친일 잔재 청산을 하지 못한 것을 꼽고 싶다. 해방 이후 8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공정하고 청렴한 대한민국이 되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위와 영달이 최우선인 인간들이 국가의 기득권으로 그대로 자리하고 여전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좌지우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실현

독립운동가의 자손들은 가난한 부모를 두었기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계속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나라를 팔아먹은 인간들의 자손들은 그 부모가 나라 팔아먹고 쌓은 부로 좋은 교육을 받고 부모의 권력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친일파의 후손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는 것도 직접 목도하고 있다. 그들이 뻔뻔하게 아버지의 권력으로 출마를 할 수 있다 치자. 하지만 그들을 선출하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선출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친일파에 대해 관대하거나 적어도 무관심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축구 한일전과 올림픽 한일 경기에 애국심을 불태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건 무슨 코미디인가 싶다. 반대가 되어야지 정상이 아닐까? 민간의 문화, 경제 등을 우호적으로 정치는 자주적으로...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세 가지 민족 과제가 있었다. 통일 정부 수립, 토지 개혁 실시, 친일파 처단을 통한 민족정기 수립이 그것이다.

농지개혁법(농지는 경작할 자가 소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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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농지개혁법에 대한 총평 토지 문제는 조선 중기부터 내려온 고질적인 문제였습니다. 농업 국가인 조선에서 토지가 일부 귀족 세력에게 점점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당연히 토지를 잃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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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국회는 반민법을 공포하여 관련 특별위원회, 특별 검찰부, 특별 재판부를 구성한다. 우리 역사에서 유일하게 수사, 재판까지 담당하는 기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위원장은 민족 지사 김상덕이었다. 그는 2.8 독립선언 학생 대표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오랫동안 헌신한 인물이었다.

반민특위는 종로 화신백화점 사장으로 유명했던 친일 기업인 박흥식을 시작으로 이광수, 최린 등 거물급 친일파들을 줄줄이 체포하면서 국민들의 열화가 같은 성원을 받는다. 당시 잡혀 온 친일파들의 소회도 크게 화제가 됐다. 이광수는 일제가 망할 줄 몰랐다는, 변명형, 최한은 자신을 찢어 죽이라는, 반성형, 박중양은 조국을 위해서 친일했다는, 확신형, 이종형은 빨갱이들이 자신을 친일파로 몰고 있다는 이념형으로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였다. 핑계없는 무덤없고 억울한 사람이 제일 넘쳐나는 곳이 교도소라고 한다.

하지만 반민특위는 친일파들의 가역한 반발에 난항을 겪는다. 당시 관료의 상당수, 특히 경찰은 일제 강점기 친일 부역자들이 여전히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은 우리나라의 건강한 발전에는 당연히 관심이 없었다. 얼마나 빠르고 편리하게 우리나라를 안정시켜 장악하는 것이 주목적이었기에 자신들이 알아서 도망갔던 친일 부역자들을 그대로 불러들여 나라의 실권을 그대로 쥐여주었다. 하여 독립운동가들을 때려잡던 친일 경찰이 독립운동가들을 빨갱이로 몰아 때려잡고 이후 그 기술로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들을 때려잡는 현대사의 비극이 반복된다.

친일 경찰 세력은 테러리스트 백민태에게 권총과 수류탄 등 무기를 지원하여 김상덕을 비롯한 반민특위 지도부 암살 계획을 세웠고 강원도 조사부에서는 특위 책임자를 호위하는 경관이 오발 사건을 가장하여 특위 위원의 암살을 시도할 지경이었다. 반민특위에 반발하여 검사 10여명이 퇴진하거나 반민특위 위원이었던 김준연이 오히려 활동을 무력화하려고 노력하거나 이종형 같은 친일 세력이 반공 구국 궐기대회를 열면서 반민특위를 용공 단체로 모는 등 다양한 저항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국회 프락치 사건, 반민특위 습격 사건이 일어나면서 반민특위는 강제로 와해된다. 국회 내에 북한과 협력하는 용공 분자가 있다는 주장으로 국회의원 여럿이 체포됐고 경찰이 수십 명의 병력을 끌고 직접 반민특위를 습격하여 무장 해제를 자행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3권분립 국가에서 경찰이 자의적으로 사법부 특별기구에 병력을 끌고 가 무력행사하였지만 이승만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두둔하며 반민특위 활동을 노골적으로 막았다. 이것 또한 미국에 기대 자유 진영의 반쪽짜리 대통령 자리를 꿰찬 이승만으로서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은 친일 세력이 아니라 공산 세력일 것이기에 그로서는 당연한 결정일 것이다.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던 그가 우리나라 민족지도자가 아니라 그저 영어 잘하는 기회주의자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반민특위를 이 꼴로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그는 시대의 역적으로 기록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로써 약 300여명을 체포하며 친일파 처단에 앞장섰던 반민특위는 사실상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한 채 1년여 만에 활동을 종료한다.

우리나라는 단 한명의 친일파도 처벌하지 못했다.

 

느리더라도 끝까지 과거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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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이라는 것은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일반법과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각종 특별법이 재정돼 있습니다.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특별법이 재정되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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