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식민사관이란?
식민사관은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역사관으로 정체성론, 타율 성론, 당파성론 등이 그것입니다. 핵심 주장은 정체성론으로 한반도의 역사가 오랫동안 정체 상태에 머물렀다는 주장인데 타율성론과 당파서론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타율성으로는 한반도의 역사가 주체적으로 발전하기보다는 중국 문명에 기생하면서 성장했다는 입장입니다. 당파성으로는 조선 시대 붕당정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밤낮없이 이전투구만 하는 당쟁이 조선 왕조의 멸망을 부추겼다는 것입니다. 즉, 조선의 역사는 사대주의에 찌들고 당쟁만 일삼던, 비전과 성장이 멈췄던 역사라는 의미입니다.
사실 정체성론은 유럽학자들의 세계관에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통상 고대, 중세, 근대로 역사 단계를 구분하는데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역사는 발전했다고 보는 것이 유럽인들의 보편적인 역사관입니다. 고대는 그리스-로마 문명, 중세는 가톨릭-서유럽 문명 그리고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으로 통했으며 근대로 들어선다는 전형적인 발전 사관입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역사를 파악하면 유럽을 제외한 다른 지역이 모두 정체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국가는 왕조가 반복됐고 종교의 영향력이 강했으며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유럽학자들의 세계관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일본은 고대 천황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그리고 메이지유신을 통해 근대 국가가 됐으니 유럽과 일본만이 근대 국가로 발전했다는 주장을 공식화한 것입니다. 약 2천년간 왕조 사회를 유지했던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를 모두 정체됐다고 봤습니다. 이는 지극히 유럽과 유럽에 대한 사대주의로 찌든 일본의 논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치열한 반론이 제기돼 왔습니다.
2. 정체성론에 대한 반론
우리나라의 왕조 국가는 서양의 왕조 국가와는 그 성격이 너무도 달랐습니다. 왕의 일가가 왕가의 이익을 위해 전쟁이나 왕가의 사치를 충당하기 위해 무리한 행정을 펼쳐서 단기간에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국가 운영을 하지 않았습니다. 서양은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된 물품들을 팔 새로운 교역처가 계속 필요하였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앞서 본인의 글에서 밝혔던 바와 같이 조선과 그 이전에 우리나라 왕조에서는 오늘날과 거의 흡사한 행정체계를 이미 갖추고 있었습니다. 정치, 행정, 사법이 모두 존재하였고 교육체계 또한 체계적이었으며 관리 또한 시험을 통해 철저히 관리하여 뽑았습니다. 정체되어 있었다기보다 이미 오늘날과 흡사한 고급문화가 발전되어 있었습니다. 자신과 발전 방향이나 속도가 다르다고 하여 정체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극히 오만한 제국주의 시대 정신입니다. 자기들의 잣대로 다른 나라를 판단하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데도 무력으로 나라를 강제 병합하고 너희 나라를 발전 시켜준거라는 논리 또한 지나친 자국 합리화입니다.
3. 타율성론에 대한 반론
우리가 당시 최고 수준의 문화를 갖고 있었던 중국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국에 인접해 있었고 중국과 같은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로서 두 나라는 서로 오래 좋은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우리나라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외교 정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은 받아들여 우리에 맞게 발전시켰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정말 중국 문화에 기생하였다며 이토록 독자적인 우리나라 문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글이겠습니다. 중국과 거의 교역하지 못하고 거리도 떨어져 있는 일본은 대부분의 문자가 한문으로 되어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완전히 다른 문자 한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의복이며 음식, 음악 문화 또한 완전 다릅니다.
4. 당파성론에 대한 반론
조선시대 붕당정치는 오늘날의 정당정치와 아주 흡사합니다. 물론 많은 부작용이 있기도 하였지만 서로 더 나은 판단을 위해 치열하게 싸웠고 이러한 서로 간의 견제가 왕과 또는 어느 한 세력이 독재하는 것을 적절히 막아주었습니다. 실제로 왕과 당파로 나뉜 신하들의 팽팽한 견제가 있었던 시기보다 어린 왕이 즉위하고 이에 득세한 외척 세력이 권력을 모두 갖게 되면서 조선은 세도정치라는 것이 시작되고 삼정이 문란해지고 백성의 삶은 힘들어졌습니다. 일제의 이 당파성론은 반론을 제기하는 쪽은 시끄럽고 분란을 만드는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우리 민족에게 깊이 새겨주어 아직도 국민을 억압하는 요인으로 많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일제가 남겨 놓은 식민사관은 우리나라의 몹시 나쁜 예와 서양이나 일본의 아주 좋은 예를 비교 대상으로 하여 ‘우리는 안돼’라는 ‘우리는 미개해’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일례로 우리나라의 일반 백성 음식문화는 밥상 하나에 찌개와 반찬을 놓고 가족이 모여서 같이 먹는 식습관이 있는데 서양 귀족의 식습관과 비교하며 비위생적이고 미개하다는 논리가 한동안 성행했었습니다. 이건 비교 대상이 잘못되었습니다. 서양의 귀족과 비교하려면 우리나라 양반의 식문화와 비교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 양반들은 모두 개별 밥상에 개인 반찬과 국을 따로 받아서 개인 식사를 했습니다. 조선 시대 양반은 사치스러운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므로 작은 밥상에 간단하고 정갈한 음식 문화를 즐겼습니다.
이렇게 비교군을 잘못 설정하여 자신을 깎아내리는 식민사관은 아직도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남아 우리나라에 대해 자긍심을 갖지 못하고 자책하고 분열하게 하는 요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잊지 맙시다. 당신은 5천년의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고 일제 식민지에서 내전으로 분단된 후 독재정치를 겪으면서도 민주화와 눈부신 경제발전을 함께 일궈 낸 놀라운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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