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지나치게 고대사에 치우쳐있습니다. 주로 시대순으로 가르치는 통사적 시각의 역사교육이기에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열심히 가르치다 대부분 근현대사를 대충 가르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최근의 일이며 그 어떤 나라보다 처절한 근현대사를 거쳐왔기에 아직도 민감한 현안들이 많은 관계로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여 근현대사에 해박한 지식은 아니더라도 그 시기 우리 민중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살아있는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추천합니다. 한국 근현대사 전체를 총괄할 수 있으며 탄탄한 문학적 수준과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깊은 해석이 들어가서 소설이지만 역사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조정래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순으로 집필하였으나 이미 다 출간된 책들이기에 나는 시대순으로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1. 《아리랑》
아리랑은 1904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는 소설로 한반도뿐 아니라 일본, 하와이, 만주, 러시아 등 민족의 수난사를 입체적으로 그렸습니다. 총 12권의 대하소설로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중 가장 깁니다. 하지만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 무서워하지 말고 독서를 시작해 보세요.
작가는 아리랑이라는 노래를 참 신통한 노래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먼 타국 땅 터키의 콜로세움 극장에서 단체 관광을 온 아주머니들이 화음을 맞추어 아리랑을 부르는 광경을 목격한 적 있습니다. 너무 아름답게 부르셨는데 그냥 눈물이 날 거 같았습니다. 아마도 이 노래만큼 한국인의 정서를 잘 나타내는 노래도 없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작가님이 이 제목을 일제 강점기를 관통하는 대하소설의 제목으로 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대하소설 《아리랑》은 일본 강점기를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결국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의병 대장으로 앞장선 양반, 동학과 의병 활동에 서슴없이 나선 머슴, 사람들을 다독여 의병의 부활을 모색하는 스님. 그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나섰고 차별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또한 나라를 빼앗긴 힘없는 백성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지주들에게 당했던 소작인들은 더 악랄한 일본인들에게 굽신거려야만 했고 부모를 잃고,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지만 함께 하는 민족이 있기에 이겨낼 수 있었음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반면 오로지 자신의 안위와 부의 축적에만 관심이 있던 일본의 앞잡이로 나선 조선인들의 행태 또한 적나라하게 묘사했으며 그들이 우리나라에 어떻게 기득권세력으로 뿌리 내는 지를 알기에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
2. 《태백산맥》
1983년 9월부터 월간지 현대문학에 연재되기 시작해 1986년 제1부 3권, 1987년 제2부 2권, 1988년 제3부 2권, 1989년 제4부 3권이 출간되었습니다. 당시까지도 남북과의 이념 문제가 굉장히 예민하던 시기였던지라 11년간 이념 시비로 법적 분쟁까지 하였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모든 역경 속에서도 1천 3백만부 이상이 팔리고 200쇄 이상 인쇄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있는 최고의 베스트셀러입니다.
1948년부터 1953년까지를 다룬 장편소설로 1948년은 분단이 확정된 해이고 1953년은 한국 전쟁이 후 분단이 굳어진 시절로, 작가는 이 시기를 정면으로 관통합니다. 좌우 갈등, 분단 그리고 이념전쟁을 벌이면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던 민족사의 아픔을 극히 사실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특히 주인공이 좌익이라는 점이 가장 이례적인 이 소설의 특징일 것입니다. 그 당시 무조건 적대시했었던 좌익세력이 우리나라를 위하는 애국심에서 시작하여 목숨을 바쳐 노력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희생된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아픈 역사였음을 지극히 사실적인 사건 중심으로 담아냈습니다. 이 소설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 시기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3. 《한강》
4.19 전야인 1959년부터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까지 20년 동안의 현대 한국사를 주인공을 포함해서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생생히 그려냈습니다. 총 10권으로 출간되었으며 제1부 격랑의 시대, 제2부 유형의 시대, 제3부 불신의 시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강》은 시대의 흐름에 의해 각각 인물들의 인생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잘 알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연좌제, 해외 근로자 파견, 베트남 전쟁 파병 등 한국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개념이나 4.19, 5.16, 유신,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전태일, 임종국, 김진홍 등의 실존 인물이 주연급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다른 작품에 비해 가장 최근에 일이었기에 이해가 쉽고 그래서인지 다른 대하소설보다 좀 더 쉽게 읽히는 면이 있습니다. 드라마로도 제작하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혀 결국 제작되지는 못했는데 꼭 드라마로 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사건 중심으로 옛날이야기 읽듯 한 번에 재미있게 정리할 수 있는 책임이다. 물론 내용이 웃긴다는 게 아닙니다. 역시나 격변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고달픈 삶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가슴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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