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영되고 있는 재벌 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가 나에게 계속 글을 쓰는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 우리나라에만 있어서 세계사전에 우리나라 말로 등재되어있다는 ‘재벌’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바로 그 고리, 정경유착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가끔 정치와 경제가 무슨 상관있냐며 또는 정치가 내 삶에 무슨 상관이 있냐며 나는 정치에 관심 없다는 사람이 있던 데 정치가 경제에 그리고 그게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이 없으면 왜 정경유착이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둘 사이는 절대로 분리할 수 없는 공생관계입니다. 그리고 경제가 내 삶에 영향을 안 준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 공생관계가 불법적으로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만 서로 작동할 때 국가 전체에, 국민들의 삶에 커다란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고 대부분 국민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정경유착이라 함은 기업이 불법적으로 정치 자금을 대고 정치인이 각종 특혜를 제공하는 관행으로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경유착 사건은 1952년 중석불 사건입니다. 정부는 농사철을 앞두고 비표와 식량을 도입하기 텅스텐 수출로 벌어들인 470만 달러를 사용하여 밀가루 9940톤과 비료 11368톤을 들여옵니다. 문제는 이 물품 수입을 주도한 대한중석, 고려흥업, 남선무역 등 14개 회사가 밀가루와 비료를 자유롭게 판매하여 200억 원에서 500억원 정도의 부당이득을 취한 것입니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회에서 특별조사단이 꾸려지지만 진상 조사는 쉽지 않았습니다. 달러 남용을 주도한 부서는 재무부였고 대통령 이승만이 이에 대한 처벌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부가 팔 수 있게 줬고 기업이 이익을 남겨 팔았고 그 일부를 정부에 헌납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사건입니다.
이런 식의 시건은 박정희 정권기에 가속됩니다. 정부가 주도하여 차관을 들여오고 값싼 이자로 자금을 기업에 빌려주는 관행이 정착됩니다. 그러면서 기업들이 앞다투어 정부에 로비했습니다. 정부로서는 빌려온 차권을 제일 잘 굴릴 수 있는 기업에게 돈을 주고 기업을 열심히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하는 스토리였다면 아름다웠겠고 일부 그런 면도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나라는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가 장기 집권을 넘어 유신체제를 원하면서 올바르지 않은 정권을 억지로 유지하기 위한 상당한 비용이 필요했고 박정희 주변에 충성이란 이름으로 돈을 빼먹는 관료들이 넘쳐나면서 빌려 온 돈을 정말 잘 굴릴 수 있는 똘똘한 기업이 아닌 부정하게 이득을 내서 정치자금을 얼마나 많이 줄 수 있는 기업에 그 차관이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전두환 정권기는 이것이 더욱 심각해집니다. 정치자금이 박정희 때는 10%, 전두환 때는 20%까지 올라갔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 정도였다고 합니다. 전두환은 정치자금 제공에 소극적이었고 정권에 비협조적이었다는 이유로 국제그룹을 해체해 버립니다. 국제그룹은 당시 재계 7위 그룹이었는데 1985년 2월 정부 지시로 국제그룹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제일은행이 발행어음을 모두 부도 처리했고 한일합섬, 극동건설, 동국제강 등 국제그룹보다 한참 작은 회사들을 통해 계열사를 분할합니다. 그룹 해체를 30분 전에 통보하는 수준이었는데, 전두환 대통령은 이것을 기업 합리화 정책이라고 강변했습니다.
당시 전두환은 일해재단을 만들어서 재벌들에게 기부를 권유했습니다. 대부분 재벌들이 협조적이었던 데 반해 국제그룹은 단 5억원, 그마저도 어음으로 내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운털이 박혔습니다. 국제그룹은 부산을 기반으로 왕자표 고무신을 만들면서 성장했고 당시 고가 브랜드인 프로스펙스를 출시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습니다. 미국에 최초로 우리나라 운동화를 수출한 기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치자금에 소극적이고 부산에 김영삼 돌풍을 막는 데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이유까지 겹치면서 해체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정치 권력에 줄을 잘 못 서는 일에 재계 7위 기업이 공중분해 되는 것을 본 다른 기업들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더 앞다투어 돈을 더 많이 내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재벌 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대통령 후보로 나온 모든 후보에게 정치자금을 대고 유력한 후보에게는 직접 찾아가 더 많은 정치자금을 대는 모습이 나옵니다. 결국 그 재벌은 돈을 골고루 잘 뿌린 덕에 특정 사업의 독점권을 얻어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부에 돈을 크게 지불할 수 있는 기업들만이 살아남았고 그 기업들은 계속 독점권과 이익권을 갖게 되었고 더 크게 성장합니다. 이런 경제 생태계가 형성되면서 우리나라에는 재벌이라는 것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런 일은 독재, 군사 정권에만 일어난 일은 아니었습니다.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들도 재단을 만든다고 기업에 후원금을 요구하고 대통령과 친분을 과시하며 자기들이 벌이는 사업에 자금을 요구하고 심지어 딸이 타는 말까지 기업에 사게 하는 등의 행태를 최근까지도 보이는 일들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게 우리나라 정경유착의 현주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짚어봐야 할 문제는 ‘준 사람이 잘못일까?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잘못일까?’라는 문제입니다. 물론 둘 다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려면 일단 정치가 바로 서야 합니다. 재벌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정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발 ‘정치가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어’라고 생각하며 투표하는 날 놀러 가거나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투표하지 말고 정치자금 안 받고 기업이 건전하게 경쟁하여 일할 수 있게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어 줄 수 있는 정권을 세웁시다. 처음에는 쉽게 정치자금 내고 부정하게 정보를 얻고 사업권을 따서 돈 벌던 기업들이 오히려 반발할 것입니다. 그렇게 부정한 기업이 스스로 무너지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한 100년쯤 노력하면 70년쯤 이어 온 지금의 정경유착 고리를 끊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당분간은 어려워 보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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